2009년 04월 13일
마더 나이트 - 커트 보네거트
유명한 작가인데 유명해서 그런지 이상하게 손이 안 가서, 읽어본 건 이게 처음.
매력 있는 글이다. 근데.... 재미는 없다.(쩝.....)
난 볼륨 있는 내러티브를 가진 글을 좋아하는데 이건 이야기보다는 주인공의 사유의 흐름을 독특한 스타일로 묘사하는 게 중심이라. 도무지 웃지 못할 상황에서 날리는 블랙유머도 적응하기 힘들고. '현대인의 고질병인 정신분열증' 운운하며 날리는 블랙유머는 좀 웃었지만.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주인공의 내면 역시 알듯 말듯하면서 결국 공감이 가지 않았다. 열성 나치당원과 미국 스파이라는 양면 모두를 완벽하게 수행해냈지만 그 양쪽 모두에 어떤 가치를 두지 못하는 주인공을 보면 결국 양쪽 모두를 무가치하다고 여기고 있으면서도 왜 그런 삶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런 삶을 선택해놓고 왜 자신이 선택한 삶 속에서 스스로 땅속으로 삽파고 굴러떨어지고 있는지가 참 이해가 안간다. 그를 움직이게 한 가장 큰 동원은 아무래도 그 개인의 양심인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그는 스스로의 양심에 있어서도 결코 충실하지도 적극적이지 못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글의 스타일, 모순적인 블랙 유머나 주인공의 내적 자학의 묘사가 확실히 독특한 매력이 있다. 근데 작가의 글을 또 보게 될지는 모르겠다. 보고나면 정신적으로 상당히 다운되는 스타일의 글이라.
늑대와 향신료 - 하세쿠라 이스나
경제판타지는 개뿔. 이건 사기판타지임.
주인공이 물건 팔면서 여행하는 게 아니라 사기를 쳐대면서 여행하고 있음. 대충 기억나는 것만 허위광고에 부실물품판매, 밀수, 결혼사기, 삥뜯기..... 사기 교범록이나 다름없는 이런 내용이 경제판타지로 포장되는 세태가 매우 통탄스럽...음음.
아니 근데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일반적인 상거래 기준으로 이거 영락없이 감방행이다 싶은 사기술을 로렌스 일행이 아무 죄책감 없이 상술이라고 말하고 있는 부분은 진심 놀랐다. 일본에선 그런 게 상술로 받아들여짐? 아무리 상인과 사기꾼이 종이 한장 차이라지만 이정도면 전과 몇범 타이틀은 무난하게 획득.... 부부사기단 팀플레이로 친 결혼사기는 특히 심했음. 남의 재력을 갖고 노는 것만도 부족해서 남의 마음도 갖고 노냐 그래.
그나저나 로렌스, 이누미미 미소녀랑 새롱거리면서 사기질행상질 하니 좋냐?
스타쉽 트루퍼스 - 로버트 하인라인
........뭐냐 이 마초판타지는.
소설이라기보단 프로파간다, 양키 스타일 군대 홍보 포스터 한장 구경한 기분임; 목적과 이유가 불분명한 등장인물들, 전쟁이 아니라 전투를 찬양하는 식의 묘사도 별로지만 가장 마음에 안 든 건 민족주의와 군국주의, 마초적 허영심을 자극하는 낯뜨거울 정도로 열렬한 군대 찬양. 그 낯간지러워지는 군대 찬양을 통해 작가가 계획적으로 독자의 허영심을 자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만.... 글쎄, 굳이 마초판타지를 선택하라면 나는 젤라즈니 스타일의 신화적 마초 히어로가 더 좋거든.
# by 흰토끼 | 2009/04/13 02:08 | 인쇄물잡담 | 트랙백 | 덧글(4)